팔관회는 신라 진흥왕 때 불교의 팔관재계를 지키기 위해 열렸던 불교법회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사 교육과정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같이 시작한 연등회와 세트로 묶이는 경우가 많은데, 차이점은 연등회가 불교 행사라면 팔관회는 불교 행사기는 하지만 차츰 불교적 색채가 옅어져 무속 신앙의 제천행사의 성격이 있었다. 그리고 팔관회는 고려가 멸망하면서 맥이 끊겼고 연등회는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팔관회와 관련된 사건으로 1170년 의종 24년의 팔관회에서 무신정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성계를 암살하려고 했던 곳 역시 팔관회 장소였다.
1275년 왕이 팔관회를 열며 금오산 편액의 표현을 고침 - 고려사
1280년 왕이 사판궁에서 팔관회를 개설함 - 고려사
1295년 팔관회를 열고 왕이 법왕사에 행차함 - 고려사
1311년 팔관회를 정지함 - 고려사
1313년 팔관회를 개설하고 왕·상왕·공주 등이 의봉루에서 구경함 - 고려사
1357년 사천대의 건의대로 팔관대회의 날짜를 조정하여 개설함 - 고려사
1361년 이성계가 홍건적 왕원수의 군대를 격퇴함 - 고려사
1372년 팔관회를 열고 왕이 법왕사에 행차함 - 고려사
1389년 김저 등이 우왕의 사주로 이성계를 습격하였다가 실패함 - 고려사
1389년 이성계 암살 음모가 탄로나서 우왕을 강릉으로 옮기고 창왕을 폐위시킴 - 고려사
1422년 대사헌 원숙이 양녕 대군이 부왕과 모후에 불효함을 들어 탄핵함 - 조선왕조실록
1441년 민의생·김종서·유계문·권전·윤득흥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조선왕조실록
1484년 박성손·이극기·유순·윤간·박안부·이계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조선왕조실록
1487년 상당 부원군 한명회 죽음 - 조선왕조실록
1530년 장순손이 이조 판서, 김당이 우찬성, 홍언필이 형조 판서가 됨 - 조선왕조실록
1600년 세력으로 민가를 점탈할 경우 엄중히 다스릴 것을 명함 - 조선왕조실록
1717년 전국 호구수 54만 7,709호에 인구수 682만 9,771명으로 통계됨 - 조선왕조실록
1722년 영의정 조태구가 60차례 사직하고 정사에 나아가지 않음 - 조선왕조실록
1725년 좌의정 민진원을 실록 총재관으로 삼음 - 조선왕조실록
1729년 민생의 폐단을 고려해 어영청의 구리 채굴을 정지시킴 - 조선왕조실록
1742년 경외의 양역이 무거워 양역 사정청을 설치하게 함 - 조선왕조실록
1743년 《오례의》를 수정하게 함 - 조선왕조실록
1747년 태학에서 제주 감귤을 내리고 치르는 과거(감제)를 시행함 - 조선왕조실록
1749년 월식이 일어남 - 조선왕조실록
1751년 현빈(효장세자빈)이 건극당에서 훙서함 - 조선왕조실록
1755년 흠휼하는 형정을 행하고자 함 - 조선왕조실록
1756년 각 도의 유민이 서울로 몰려들자 선혜청에서 죽을 쑤어 진휼하게 함 - 조선왕조실록
1770년 팔도와 양도의 묵은 포흠 등을 탕감할 것 등을 명함 - 조선왕조실록
1775년 태학과 사학 유생에게 제술을 시행함 - 조선왕조실록
1810년 식년 문과가 실시됨 - 조선왕조실록
1895년 최초로 근대적 예산 편성 - 근대사 연표
1905년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에 회관 설치 - 근대사 연표
1919년 겸이포 삼릉제철소 직공 250명, 임금 인상·8시간 노동제 등 요구하며 동맹 파업 - 근대사 연표
1922년 양정고보생, 일본인 교사 배척 동맹 휴학 - 근대사 연표
1943년 중추원, 학병 지원 거부자 휴학 조치·징용 결정 - 근대사 연표
1963년 민정당, 박정희의 대통령 당선 무효 및 선거 소송 제기 - 대한민국사 연표
1964년 법원, 한강교를 폭파한 고 최창식 대령에게 무죄 확정 - 대한민국사 연표
1970년 수도권 지하철 4개 노선 확정 - 대한민국사 연표
1972년 의료 보험제를 확대하여 1981년까지 국민의 55%를 가입토록 한다고 발표 - 대한민국사 연표
1983년 KBS 이산 가족 찾기 생방송 마감, 10만 952건 신청·5만 3536명 소개·1만 189가족 혈육 상봉 - 대한민국사 연표
1989년 서울 지역 여학생 대표자 협의회, 신입 사원 지원 자격 남자로만 제한한 8개 회사를 〈남녀 고용 평등법〉 위반으로 고발 - 대한민국사 연표
1992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 한국이 원하면 6·25 전쟁 관련 구 소련 정부 문서 인도 용의 언급 - 대한민국사 연표
1995년 김영삼 대통령, 장쩌민 중국 국가 주석과 정상 회담 - 대한민국사 연표
2003년 중국 동포 5천여 명, 헌법 재판소에 한국 국적 회복을 위한 헌법 소원서 접수 - 대한민국사 연표
2005년 경기도 화성 9번째 연쇄 살인 사건, 15년 공소 시효 만료 - 대한민국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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